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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후기] 국제기계공구 생산관리/중소기업지원/일반사무직

조회 : 651

작성자 : 김민정 등록일 : 2017-12-29

카테고리 취업성공



2001년의 일이니까 어느새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당시 경력단절 7년이라는 이력이 전부였던 나는 어린아이가 둘이었고, IMF여파로 빚만 태산 같았습니다. 어디로든 취직이 절박했던 시기였습니다.

 

고졸이고, 결혼 전까지 개인회사 경리직에서 근무했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전문직 재취업은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수십 통의 이력서를 작성하여 현장 직으로 바로 직진하였습니다. 생산직, 판매직 가리지 않았고 식당 목욕탕, 주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취직만 하면 한달 얼마간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들일 수만 있다면 감사한 일이었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이력서를 드밀었습니다.

 

7년의 공백 기간 동안 현장감이 현저히 떨어진 것인지 수많은 곳 중 단 한 곳에서 조차도 합격통보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곳은 아예 대놓고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고개를 갸우뚱 하셨고, 어떤 곳에서는 그 곳 사장님보다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사가 거절되었습니다.

불편하다는 것이었지요. 취직을 못해 안달이 난 저는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3개월 임시직 경력불문, 나이제한 없음, 공장관리가 가능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목격했습니다.

 

3개월 임시직이 내심 걸리긴 하였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사람을 구한다는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사상구 감전동 신축공장이었습니다. 공장 곳곳 아직 치워지지 않는 대패밥들이 가득하였습니다. 말이 공장관리이지 전반적인 청소요원을 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청소부 일용직을 채용하게 되면 비용지출이 높으므로 3개월 임시직으로 아르바이트요원을 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취직만 시켜주시면 이라는 자세로 한번 출근해보라는 말이 떨어지기만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렇게 200191일부로 저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수공구를 제작하여 국내대형조선사들에 일괄납품하고 있었습니다. 1985년 설립된 후 조금씩 성장해오다 2001년 그때당시 신축공장을 완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나마 저의 지정된 업무공간이 공장에 마련된 사무실이었으므로 청소와 간단한 문서관리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 곳곳 가득한 대패밥을 치우고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내가 3개월 임시직이라는 본분을 잊은 체, 내가 직장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하루하루 중독된 시간들을 살았습니다. 한 달쯤이 지났을까요. 지금까지는 회사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몰랐던 일들이 점차적으로 눈에 귀에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직원 10명 미만의 소기업 이다보니 직원의 구성을 알고 보면 가족이고, 친인척 관계였습니다. 사장님이 제품 개발을 전담하시고 그 업무를 내려 받아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 사장님의 가족이었습니다. 현장에는 사장님의 형제와 친구 분들이 각자 맡은바 위치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구요.

 

사장님이 컴맹이시라 사장님 손끝에서 표출되는 문서와 제품정보들에 대하여 전산작업을 전담하고 있던 직원이 부득이하게 1년 정도 자리를 비워야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구하고자 오래전부터 구인광고와 소개를 받는 등의 방법으로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아직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유는 모르나 전담직원이 자리를 비워야 하는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Auto Cad 프로그램에 관하여 사장님은 거의 일급기밀이라도 되는 양 제품설계 도면 등을 보관 관리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셨습니다. 아예 금고 하나를 마련하여 컴퓨터 안에 저장되어 있는 제품도면 파일들을 그때당시 플로피 디스켓 하나하나에 저장을 하고 라벨을 붙이고 금고 안에 차곡차곡 정리를 하여 보관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저장방법을 강구하시다가 하드디스크를 구입하여 제/부품 도면 전부를 일괄 저장하여 금고에 보관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도대체 Auto Cad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유난을 떠시는가? 라는 생각이 솔직히 제가 한 첫 생각이었습니다. /부품도면 저장하는 작업을 하시는 동안에는 다른 직원은 근처에도 못 오게 하시고, 전담직원과 딱 두 분이서만 저장작업을 한 후 금고로 직행, 두 번 다시 금고문을 열지 않을 것처럼 굳게 잠궈 두시는 겁니다.

/부품 도면들이 워낙 중요한 정보들이고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보안에 철두철미하셔서 Auto Cad 뭐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2001년 그때당시만 하여도 지금처럼 회사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던 때도 아니어서 나는 겁 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회사에서 쓰는 업무프로그램이라면 엑셀, 파워포인트, 한글, 포토샵 등 웬만한 프로그램들은 별 저항 없이 다룰 수가 있는데 Auto Cad 는 그때 당시 나에게 있어서는 신의 영역 안에 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도대체 저것이 뭐길래 저러시는가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여섯시 삼십분 정규 퇴근시간 전 직원 공장을 빠져나가고, 공장 문이 잠기고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돌아가고 나면 일곱 시쯤 다시 공장 문을 열고 사무실 불을 켜고 컴퓨터 전원버튼을 눌렀습니다.

보기에만도 질려버릴 것만 같은 두툼한 Auto Cad 책을 펼쳤습니다.

어린아이 둘은 시어머니가 돌봐주고 계셨고, 남편에게는 매일같이 일이 좀 늦게 끝난다 양해를 구해 두었습니다. 일곱 시부터 열시까지 매일 세 시간씩의 Auto Cad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3개월 임시직인 이 회사에 오래도록 남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보통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 한 가지 정도 알고 있다면 2개월 뒤 다시 구직시장에 나의 이력서를 들고 나설 때 한 가지 더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알아두고자 했던 것 입니다. 처음에는 명령어조차 알아먹기가 힘이 들더니 차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게 되기까지 보름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설계담당자가 부재중인 시기에 도면을 수정하여 제출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사장님 수정 펜과 자와 볼펜을 들고 다니시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기존 출력되어져 있던 도면에 수정 펜으로 지우고, 자로 지워진 표식을 감쪽같이 다시 그리고 볼펜으로 수정사항을 기록하여 다시 복사해서 형광불빛 아래로 가져가 비춰 보신 후 감쪽같다 싶으시면 제출처로 보내시는 겁니다. 보아하니 수정내용이 힘든 사항도 아니었기에 원본파일만 있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장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구요. 처음에는 나를 못미더워하시며 수정 펜, , 볼펜조차 넘겨주려 하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프라인 작업으로 수정을 해보겠다 말씀드리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으신 겁니다.

 

컴퓨터에서 원본 파일을 건드려 수정을 해드릴 수 있다 하니 절대 안 된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도면 망친다고 말이지요. 서류에 덕지덕지 종이를 덧붙이고 수정 펜으로 지우고 하면서 꼬질꼬질 뗏국물을 흘리면서 수정한 문서를 내미는 것 보다 못미더운 저에게 한번 시켜 보시는 게 어떠겠냐 재차 말씀을 드렸고, 바깥에 있는 담당자와 유선통화로 한참을 말씀하신 후 저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셨습니다.

파일이 어디에 있는지 들어보라구요. 그날 첫 번째 도면수정작업은 완벽하게 성공하였습니다.

 

913개월 임시직으로 시작은 나의 근무기간은 1130일이면 종료됩니다.

11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이제 다시 어디로 가서 일자리를 구하나 싶은 걱정에 곧잘 우울감에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1120일쯤 사장님이 부르셨습니다. 직장을 구했느냐고 물으시더라구요. 혹시나 여기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았으면 가고, 그게 아니라면 정규직으로 함께 일해 볼 생각이 있느냐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였습니다.

 

2001121일부로 저의 정규직 전환은 이루어졌습니다.

정규직 전환이후 회사에서 틈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업무위치가 명목상 생산관리였지만 실제 제가 맡아 관리할 수 있는 생산업무는 없었습니다.

영업, 회계, 경리업무도 본사인 매장에서 모두 처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저는 있으나마나한 자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어쩌다 Auto Cad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을 사장님께 부각시켜 정규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지만 지속적인 자기개발이 없다면 무한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공장 쪽 상황을 보면 모두 새로 시작되는 일들이라 어떻게 보면 할 일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 말은 또 어떻게 보면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시작을 하면 일이 되는 것이고 내가 새롭게 개척해나가면 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장에서 해야 하는 간단한 금전출납업무와 본사인 매장에서 넘어오는 사무보조업무 외 새롭게 시작이 되는 일들을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잘리면 안되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남편과 나는 공동 가장이었고 집에는 시모님과 어린자식이 둘 있었고, 그리고 저에겐 저만 바라보며 홀로 살고 계시는 친정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부양해야할 가족이 많았습니다. 가장의 무게로 어떡하든 회사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회사사규도 없고, 관련기준도 없고, 변변한 매뉴얼도 없고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기에만 열심이었던 회사 생산부서에서 저는 회사에 필요한 인증업무를 도맡아 하는 것으로 자리 굳히기에 들어갔습니다. 오히려 ISO9001 품질경영시스템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서 생산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눈을 뜰 수가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증서를 어느 정도 갖추고 난 후 저는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도맡아 시작하였습니다. 지원사업에 필요한 서류들을 만들고 꾸미고 신청하고 심사받고 선정되면 현물과 현금에 대한 지원을 받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류의 업무를 올해까지 꽉 채워 16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체계가 잡힌 회사였더라면 어쩌면 저에게는 3개월 임시직으로 잠시 머물다 그만 둔 회사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뭔가 시작하면 일이 되었고, 일꺼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이 저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알 수 없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입사 16년차를 마무리하고 17년차를 준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의 저의 소망은 지금의 회사에서 만육십세 정년퇴직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째 계속되는 세계불황과 특히나 국내 조선업 치명적 불황으로 말미암아 삼 년 전부터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한 회사의 형편이 점점 나빠져 올해는 특히나 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2017년 구조조정을 시행하여 정 직원을 줄이고 외국인 근로자 추가 충원 없이 만기일에 맞춰 본국으로 귀국시킨 후 지금현재 열여섯 명의 인원으로 회사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2001년 신축공장을 시작으로 한때는 사상구 감전동에서 5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가 차츰 줄여 지금은 공장 3곳만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2018년 한해가 올해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2018년 조선업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어 내년에는 또 무엇으로 버티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뭔가 또 다른 틈새발굴이 필요할 때입니다. 2001년 입사당시에는 내가 살고자 무조건 덤벼들어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200112월 정규직 전환이후 회사에서 내 자리를 굳건하게 만들고자 틈새를 발견하고 일을 만들고 일을 추진하여 단단한 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다가오는 2018년 세계시장에서 그리고 국내시장에서 우리 회사가 버텨낼 수 있도록 그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굳건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회사를 위한 틈새를 발굴하여야 할 때입니다.

 

회사가 살아야 열 여섯 명 우리 정직원이 살고, 열 여섯 명 우리 정 직원 들이 살아야, 수십 명 우리 직원분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회사가 강건하게 존재해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취업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 되는 어려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16년 전 나의 경험은 그저 나이 많은 사람의 하릴없는 독백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보다 더 오래 지키고 있으면서 조금 더 조금 더 자기개발에 매진하다보면 취업 혹은 창업의 길이 순조롭게 열려 본인이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걸어갈 수 있으리라는 경험적 충고는 감히 드리고 싶습니다. 지루하고 딱딱한 이야기 끝까지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 모두 2018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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